2004/4/22(목) 조회: 868

김준권 개인전     김준권_붉은 산과 소나무_다색목판_80×164cm_1994 *초대일시_2004_0421_수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_2004_0424_토요일_03:00pm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    /   Tel. 02_733_9512 화각인(畵刻印)의 길을 가다 ● 리얼리즘을 가늠하며 화각인의 길을 걸어온 김준권은 앞서 말했듯이 비판적 리얼리즘 회화와 민중판화가로 출발해서 지난 10여년 간의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서정적 리얼리스트로 변모해왔다. 그는 시대를 통찰하는 리얼리스트의 진정성의 문제에 대해 ‘민족판화의 양식적 전형을 만들고 싶었다’는 말로 대신한다. 민족미학에 대한 예술적 탐구를 시도했다는 것인데, 이 점은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사구체 논쟁에 잠식되어 민족미학의 탐구란 논외의 것이 되고 말았던 점을 되새긴 결과이다. 1980년대 초반의 민족문화운동이 정치적 민족주의 논쟁에 쌓여 그 의미를 잃어버린 후 그의 기본 관심은 전통적 양식 속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 되었다. ● 1990년대의 판화 기법이나 양식에 대한 강한 집착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전통문화와 현대미술에 걸쳐있는 목판의 형식체계를 구축하는 일로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기법의 문제, 판화라는 매체의 특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중요했던 것이다. 전통적인 목판화는 밑그림을 그리고 칼로 새긴 후에 종이에 찍어내는 화각인의 과정이 분업화된 시스템이었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로우테크에서 하이테크로 전환한 현대미술에 있어서, 고대부터 존재했던 화각인의 분업화 시스템을 그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혼자서 ‘그리고, 파고, 찍어내는’ 화각인의 통합을 밀고 왔던 것이다. 기계화영농 시대에 원시적 농법을 고수하며 시대를 역행한 것이다. ● 화각인의 분리체제를 넘어서는 것을 자신의 최대 과업으로 삼아온 그는 공방판화 제작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았다. 특히 수묵판화의 경우 제작을 의뢰할 만한 곳도 없었으므로 그는 혼자서 처음 가보는 길을 묵묵히 걸어온 것이다. 과거의 선묘 판화 시대의 관행을 깨고, 면 판화의 경지를 개척하면서 수행성이 강조되는 작업을 지속했다. ‘그리고, 깎고, 찍어내는(畵刻印)’ 과정을 통해 그는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의 고독함을 천형(天刑)으로 받아들이면서 지난한 작업을 수행해온 것이다. ● 한국현대미술의 한 지형을 걸어온 김준권의 25년을 통해서 다시 리얼리즘을 가늠해보는 자리이다. 한 작가의 변모해온 과정을 일별하면서 생활과 미학의 관계를 돌이켜 보는 일 또한 이번 전시의 각별한 의미이다. 풍경 연작으로 화각인을 한 몸에 담으면서 '그리기'를 퇴행시켜온 김준권의 ‘1980년대 그림과 민중판화‘를 다시 생각해본다. 연대기적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해석 작업들을 받아들여 향후 작업의 향배를 가늠하는 푯대로 삼는 일은 작가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할 점은 그의 리얼리즘이 민중적인 것이냐 서정적인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 더 깊게 새겨진 진정성의 문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빛을 잃지 않은 채 고행과도 같은 화각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예술가적 진정성에 대한 우리의 넉넉함을 다시 한번 새겨둔다. ■ 김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