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4/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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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판화가 김준권, 류연복 개인전 
민중 목판화가 김준권·류연복 개인전
잊을 수 없는 80년대여 !
▶ 류연복씨(左)씨는 경기도 안성 숲속 작업실에서 나무를 죽이며 생명을 살리고, 김준권씨는 충북 진천군 농가에서 논밭 갈듯 목판을 판다.
김준권(48).류연복(46) 두 목판화가가 돌아왔다. 이십대와 삼십대를 싸움터이자 공사판이던 민중미술 현장에서 보낸 뒤 지역으로 들어갔던 이들이 세월이 곰삭은 작품을 들고 찾아왔다. 오는 21일부터 27일까지 나란히 열리는 '김준권 25년, 리얼리즘을 가늠하다'전(서울 공평동 공평아트센터, 02-733-9512)과 '류연복-딛고 선 땅'전(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02-736-1020)이다. 시대의 풍상이 서린 두 사람의 목판화가 1980년대를 불러온다. 잊을 수 없는 미술의 봄, 민중의 봄, 환하다. 다시, 봄이다.
슬픔과 기쁨의 역사가 극적으로 교차하던 80년대는 한국미술에서 화가들이 현실 삶 속으로 뛰어들었던 변혁의 시기였다. 화실에 웅크리고 있던 미술가들은 현장으로 달려나와 권력과 폭력이 날뛰는 야만의 시대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경고했다. 사람들은 분노한 예술, 정의를 부르짖는 우리 미술을 민중미술이라고 불렀다. 김준권.류연복씨는 그때 중심에 서 있었다. 민중목판화의 선구자라 할 오윤(1946~86)을 잇는 칼칼한 칼맛으로 두 사람은 목판이 깨치고 나가야 할 세상을 그렸다.
김준권씨는 서른 즈음에 본격 시작한 목판화와 함께 80년대 초에 그린 유화들을 내놓았다. 광주민주항쟁을 보고 피가 끓어 그린 초기작들은 비판적 리얼리즘 경향을 띠고 있다. '상(像)-오월광주(시민군)' 연작은 그가 민중판화로 옮겨가기 전단계의 바탕을 이룬다. 창고에 쌓아뒀던 해묵은 옛 작품들을 꺼내면서 그는 역사의 과정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판화로 옮겨가게 된 필연이 거기 있다. 그림으로 쓴 얘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망이 문자를 파듯 판화를 밀어내게 한 힘이 됐다.
"80년대에는 드로잉을 완벽하게 한 뒤에 팠어요. 좀 서툴기는 해도 칼집이 소박하고 기름기가 없어요. 90년대에 들어서자 손이 익으면서 칼로 바로 그릴 수 있게 됐죠. 세련돼 보이지만 풀 한 포기라도 툭툭 쳐서 나온것만 못해 보여요. 이제는 손이 기계가 다 됐구나 싶은데…, 옛날이 그립죠."
그는"민족판화의 양식적 전형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전통적인 먹판 제작과정을 배우러 해인사에 들어가 씨름했고, 중국 루쉰(魯迅)미술대에 찾아가 몇 년을 수련했다. 충북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터를 잡고 혼자서 그리고 파고 찍어내는(畵.刻.印) 노동의 시간 속에서 그는 한국의 풍토성이 짙게 밴 풍경을 만들어냈다. 모내기하던 흙손을 털고 들어와 작업장에서 칼을 잡는 그는 농군이 땅을 갈 듯 나무를 판다. 미술평론가 김준기씨는 "김준권의 지난 25년은 '민중표 리얼리즘'10년과 '일반 리얼리즘' 15년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썼다. 건강한 자연의 서정이 그의 판화를 가슴속으로 스미는 민중미술로 만들고 있다.
류연복씨는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한 작은 마을 숲속에서 산다. "우리는 나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듯 살아 있는 삶의 지혜를, 시간을 기다리는 여유와 그 여유 속에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상처의 미학을, 버리면서 새로이 얻는 버림의 자세를, 목판은 바로 그러한 나무다움을 배우는 일이죠. 목판은 나무의 죽임입니다. 찬란한 생명을 죽임으로 인해 가장 아름다운 생명을 살려냈으면 하죠"라고 말하는 그는 수도승 같다.
80년대에 그는 싸움꾼이었다. 벽화운동을 펼치고 미술대동잔치를 열었으며 경찰의 탄압을 받은 '20대의 힘전' 등을 꾸렸다. 전투는 끝났지만 그 아픔과 좌절, 기쁨과 희망이 밴 마음은 유씨 판화 속에 고운 앙금이 되어 가라앉았다. 안성 마을 전체를 지도 형식의 풍경화로 만들어가는 그의 손은 나무테처럼 단단하고 결이 깊다. 미술평론가 심광현씨가 말했듯 그의 판화는 도시적 삶에 대한 치유의 기능을 떠맡고 있는 듯 보인다.
94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민중미술 15년'전으로부터 다시 10년이 흘렀다. 과거의 화가들은 나이를 먹었지만 생태의 순환처럼 현재의 변화는 계속된다. 민중미술은 그 정신 그대로 시대의 리얼리즘을 따라 진화하는 중이다. 김준권.류연복 두 판화가의 오늘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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